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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책을 읽고 나서 뭔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개념 자체가 낯설었습니다. 읽으면 끝이라고 여겼던 거죠. 그런데 카뮈의 [이방인]을 읽고, 카프카의 [심판]을 읽으면서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책이 끝난 자리에서 진짜 독서가 시작된다는 것을.

 

이해 안 되는 책, 포기가 아니라 자기 탐색의 도구다

카를로 로벨리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를 읽다가 중간에 덮었습니다. 양자중력(Quantum Gravity) 이론을 기반으로 시간의 본질을 파헤치는 책인데, 여기서 양자중력이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통합하려는 물리학의 미완성 분야로, 쉽게 말해 '우주의 가장 깊은 규칙'을 다루는 이론입니다. 그 책 앞에서 저는 그냥 무너졌습니다. '지금은 읽을 때가 아닌가 보다'라고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고 덮어버렸죠.

반면 카프카의 [심판]은 다릅니다. 무슨 말인지 여전히 잘 모르겠는데도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계속 손이 갑니다. 이 두 책의 차이가 뭔지 한동안 생각했습니다. [심판]은 이해보다 '감각'으로 읽히는 책이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이 곧 독서 실패가 아니라, 내가 아직 언어화하지 못한 무언가가 작동하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는 거죠.

실존주의(Existentialism) 계열의 소설들, 예를 들어 카뮈의 [이방인]이나 사르트르의 [구토]가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실존주의란 '인간이 먼저 존재하고, 그다음에 스스로 본질을 만들어간다'는 철학적 입장으로, 정해진 답이 없는 질문들을 독자에게 던지는 방식으로 서술됩니다. 그래서 내용을 '이해'하려고 덤비면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대신 '이 장면에서 나는 어떤 감정인가'를 물으면 조금씩 열립니다.

독서심리학(Reading Psychology) 관점에서도 이와 일치하는 연구가 있습니다. 독자가 텍스트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때 오히려 자기참조처리(Self-Referential Processing)가 활발해진다는 것입니다. 자기참조처리란 외부 정보를 자신의 경험·가치관과 연결 지어 처리하는 인지 과정으로, 이 과정이 활성화될수록 기억 저장과 자기 이해가 깊어집니다(출처: NCBI, Self-referential processing in our brain). 즉, 이해 불능의 책이 사실은 자기 성찰의 가장 효율적인 도구가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제가 카프카를 내려놓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머리는 모르는데 어딘가에서는 계속 반응이 오고 있었던 거죠. 이해가 안 되는 책을 만났을 때, 포기보다 먼저 해볼 것이 있습니다. "이 장면이 내 어떤 경험과 닮았는가"라는 질문 하나를 꺼내 드는 것입니다.

  • 이해가 안 될수록 자기참조처리가 활발해져 자기 성찰의 깊이가 깊어진다
  • 실존주의 소설은 '이해'보다 '감각'과 '질문'으로 접근하는 것이 유효하다
  • 모르면서도 계속 읽히는 책에는 아직 언어화되지 않은 내 반응이 담겨 있다
  • 이해 불능 상태는 독서 실패가 아니라 자기 탐색의 시작 지점이다
요약: 이해가 안 되는 책은 포기의 이유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가장 좋은 거울이 될 수 있다.

 

기본과 산책, 독서가 몸에 새겨지는 방식

"다 아는 얘기네"라고 느끼는 책을 읽고 나서 솔직히 허탈했던 적이 있습니다. 꾸준히 하면 된다, 기본이 중요하다, 이런 말들을 책 한 권이 300페이지에 걸쳐하고 있는 걸 읽다 보면 '이걸 돈 주고 읽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잠깐 멈추고 생각해 봤습니다. 저는 그 '다 아는 것'을 지금 실제로 하고 있는가.

다이어트를 예로 들면 명확합니다. 운동해야 살이 빠진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국민건강보험공단 통계에 따르면 국내 성인 비만율은 2022년 기준 38.4%로 매년 증가 추세입니다(출처: 국민건강보험공단). 모두가 알고 있는데 왜 비만율이 올라갈까요. 아는 것과 하는 것 사이의 거리가 그만큼 멀기 때문입니다. 메타인지(Metacognition) 관점에서 보면 이 간극이 잘 설명됩니다. 메타인지란 자신의 사고 과정을 스스로 인식하고 조절하는 능력으로,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모르는 상태'를 구별하지 못하면 지식이 행동으로 전환되지 않습니다. 즉, '다 아는 책'을 읽으면서 정작 메타인지적 점검 없이 덮어버리는 순간, 그것은 여전히 모르는 것입니다.

창의력(Creativity)도 같은 맥락입니다. 창의력이란 기존에 없던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능력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탄탄한 기본기 위에서만 꽃이 핍니다. 기초 없는 창의력은 허공에 핀 꽃처럼 금방 시듭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른 차원의 얘기입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재미있게 쓰려고만 했을 때는 구조가 없어서 읽는 사람이 피곤했고, 기본 구조를 익힌 후에 재미를 얹었을 때 비로소 읽히는 글이 됐습니다.

그리고 산책입니다. 책을 읽고 바로 산책으로 이어지는 루틴은 아직 제게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하지만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30분 걷는 것은 어느새 습관이 됐습니다. 걷는 동안 아까 읽은 문장을 한 번 더 떠올리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이 내용이 지금 내 상황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사색(Contemplation)이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방금 읽은 것을 걸으면서 자연스럽게 다시 씹어보는 과정, 그것이 사색입니다. 이 과정이 없으면 독서는 즐거움으로 끝나지만, 이 과정이 있으면 독서가 삶에 뿌리를 내립니다.

 

요약: '다 아는 책'은 실은 아직 실천하지 않은 책이고, 산책은 그 실천을 몸에 새기는 가장 단순한 방법이다.

 

자주 묻는 질문

Q. 이해가 안 되는 책은 그냥 덮어도 될까요?

A. 덮는 것 자체가 나쁜 건 아닙니다. 다만 덮기 전에 딱 한 가지만 물어보시길 권합니다. "이 책에서 내가 반응한 문장이 단 하나라도 있었는가." 있었다면 그 문장 하나만 붙잡고 사색해도 충분합니다. 이해 가능 여부와 독서의 가치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Q. 책 읽고 산책하는 게 정말 효과가 있나요?

A. 뇌과학적으로 보면 근거가 있습니다. 걷기 운동 중에는 해마(Hippocampus) 활성도가 높아지는데, 해마란 기억의 저장과 인출을 담당하는 뇌 부위입니다. 이 상태에서 방금 읽은 내용을 떠올리면 기억 고착화가 더 잘 일어납니다. 대단한 산책이 아니어도 됩니다. 저처럼 점심 후 30분으로도 충분히 작동합니다.

 

Q. 다 아는 내용의 책을 읽는 게 시간 낭비 아닌가요?

A. '안다'는 것의 기준이 문제입니다. 머리로 아는 것과 몸으로 체화된 것은 다릅니다. 메타인지적으로 정직하게 점검하면,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 중 실제로 실행하고 있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적습니다. 기본기에 관한 책을 반복해서 읽는 것은 지식의 낭비가 아니라 실천의 점검입니다.

 

Q. 책 읽고 나서 생각 정리가 잘 안 되면 어떻게 하나요?

A. 저도 아직 이 부분이 쉽지 않습니다. 생각을 '정리'하려고 하면 오히려 막힙니다. 대신 질문 하나만 던지는 방식이 더 잘 작동했습니다. "오늘 읽은 것 중 내 삶과 닿는 게 있다면 뭔가." 정리가 아니라 연결을 찾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안 떠올라도, 반복하다 보면 조금씩 열립니다.

 

결론

오늘 읽은 세 챕터가 결국 하나로 모인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해가 안 되는 책도, 다 아는 얘기도, 책 읽고 나서 산책하는 것도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책을 읽고 난 뒤 '나는 지금 어디 있는가'를 돌아보는 시간이 결국 독서의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생각이 수반되지 않는 독서는 즐거움에서 끝납니다. 즐거움도 나쁘지 않지만, 저는 책이 삶에 뿌리를 내리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딱 하나만 실천하기로 했습니다. 책을 덮고 나서 5분이라도, 오늘 읽은 내용을 떠올리며 걷는 것. 거창한 루틴이 아니어도 됩니다. 작게 시작하면 됩니다.

참고: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4293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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